초인종이 울렸어요. "누구세요" 하고 물었더니 "밑에집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요. 그때는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안 갔어요. 층간소음 이야기는 대부분 "윗집이 시끄러운데 어떻게 하죠" 쪽인데, 그날 저는 반대편에 서 있었어요. 소리를 낸 집이었죠.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뭘 했고 뭘 하지 않았는지, 저희 집이 겪은 대로 적어볼게요.
어르신은 그날 밤이 아니라 다음날 낮에 오셨어요
아이가 뛴 건 늦은 시각이었어요. 그런데 아래층 어르신이 올라오신 건 그날 밤이 아니라 다음날 주말 낮이었어요. 늦은 시간에 올라와서 얘기하는 것보다 그게 낫겠다 싶으셨다고요.
이 부분을 먼저 적어두고 싶어요. 층간소음 얘기에서 항의하러 오는 이웃은 대개 무례한 사람으로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항의하러 오신 분이 시간을 가려서 오셨어요. 밤에 바로 올라와 문을 두드릴 수도 있었는데 하루를 기다리신 거예요. 그렇게 기다렸다 오신 분한테, 문을 연 제가 시간을 따질 일은 아니었죠.
게다가 그날이 처음도 아니었어요. 그전에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한 번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요. 언성을 높이신 것도 아니고, 몇 시라고 콕 집어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어요. (층간소음은 몇 시부터 조심해야 할까요 글에 그때 얘길 적었어요.) 그러니까 어르신은 지나가듯 한 번 흘리시고, 그래도 달라진 게 없으니까 그제야 문 앞까지 오신 거예요. 순서를 밟으신 거죠.
"아직 10시도 안 됐는데요"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문 앞에서 제일 튀어나오기 쉬운 말이 시간일 거예요. 아직 10시도 안 됐는데요, 하는.
법에 적힌 시각은 주간이 오전 6시부터 밤 10시, 야간이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예요. 다만 밤 10시는 기준이 더 엄격해지는 선이지, 그 전엔 아무 기준도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주간에도 기준은 그대로 걸려 있고요.
그리고 저는 우리 집 소리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이가 활달한 편이고, 그 외에 층간소음이랄 게 없었거든요. 확신이 서면 시간을 따질 때가 아니에요. 그래서 "쿵쿵 소리에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하고 먼저 말씀드린 다음 죄송하다고 했어요. 공감이 먼저, 사과가 그다음이었어요. 한 아파트 위아래에 살면서 엘리베이터에서 계속 마주칠 사이인데 잘못한 부분은 사과하는 게 맞다고 봐요. 막을 방법도 우리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몫이었고요.
사과 끝에 부탁을 하나 얹었어요
아이에게 주의를 계속 주고 있었고 소음방지 매트도 이미 깔아둔 상태라고 말씀드렸어요. 매트를 깐다고 소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니까 미리 해둔 거였죠. 그러고 나서 이 말을 덧붙였어요.
계속 또 그러면 인터폰이나 관리실에 알려달라고요.
사과하러 나온 마당에 부탁까지 얹는 게 얄밉게 들릴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이건 문전박대가 아니라 다음 번을 위한 약속에 가까웠어요. 법에도 관리사무소에 알리고 조치를 요청할 수 있게 돼 있긴 해요. 다만 그건 피해를 본 쪽이 쓸 수 있는 선택지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는 아니에요. "법대로 관리실 통해서 오세요" 하고 밀어내는 근거로 쓸 말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순서로 따지면 소리를 낸 쪽이 협조하는 게 먼저고요. (관리사무소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화장실로 담배 냄새가 올라와요, 신고하면 막을 수 있을까 글에서 따로 적었어요. 거기서도 관리사무소가 할 수 있는 건 권고까지였고요.)
그런데 어르신 반응이 제 예상과 달랐어요. 당신 손주들도 주말에 오면 뛰어다니고 엄청 시끄럽다고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래도 잘 시간에는 되도록이면 쿵쿵 안 거리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거듭 죄송하다고, 주의 주겠다고 말씀드렸고요.
항의하러 오신 분이 자기도 그런 입장이 될 때가 있다고 먼저 인정하고 들어오신 거예요. 그 한마디에 대화가 달라졌어요. 혼나는 게 아니라, 서로 사정을 아는 사람끼리 선을 맞추는 이야기가 됐거든요.
"애가 그럴 수 있죠"는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아이 있는 집이 이런 말을 듣는 게 억울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저희도 그 집이니까요. 그런데 늦은 시간에 아이가 뛰고 집이 소란스러운데 아무 대응도 안 하는 건, 저는 아니라고 봐요.
애니까 어른이 주의를 주고 훈계를 해야 어른이지, 그걸 다 받아줄 수는 없잖아요.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라는 얘기가 아니라, 아이가 낸 소리라고 해서 어른이 할 몫까지 없어지진 않는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아래층에서 "애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가 주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고요.
어디까지 하고, 어디서 멈출까
저희 집 얘기라 공식은 아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오면 저는 이 순서로 갈 것 같아요.
- 우리 집 소리라는 확신이 서면 시간이나 기준을 따지지 않고 공감부터 표하고 사과해요.
- 이미 하고 있던 조치가 있으면 같이 말씀드려요. 변명이 아니라 방치하고 있진 않았다는 얘기니까요.
- 사과가 끝난 뒤에 다음 경로를 부탁해요. 또 그러면 인터폰이나 관리실로 알려달라고요.
- 거기서 멈춰요. 저희는 배우자가 "가져다 줘야지" 해서 수제 케이크까지 만들어 갖다드렸는데, 그건 우리가 한 것이지 남한테 권할 선은 아니에요. 이런 건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르니까요.
- 그다음은 또 올라오실 일을 안 만드는 것. 한두 번 안에서 끝내야 하는 일이고, 그게 반복되면 감정싸움까지 가더라고요.
예외도 하나 있어요. 상대가 몹시 흥분해 있거나 술을 드신 것 같으면 저는 문을 열지 않을 것 같아요. 직접 상대하는 대신 관리실에 도움을 청하겠죠. 사과도 대화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니까요.
문 앞에 이웃이 서 있는 순간에 정답은 없더라고요. 다만 거기서 이겨야 할 일도 아니에요. 그날 어르신이 하루를 기다렸다가 낮에 오신 것처럼, 문을 여는 쪽도 한 번은 접고 들어가는 거라고 봐요. 대신 그 한 번으로 끝나게 만드는 건 그다음부터 제 몫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