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의 시선

정답은 없어도 지혜는 있으니까. 이웃과 부딪히는 순간들을 풀어가는 현실적인 방법과 지혜를 담아 보겠습니다.

공동현관에서 문을 안 잡아줬더니, 뒤에서 인터폰 소리가 났어요

아파트 공동현관 문 잡아주기, 저녁에 마주친 두 사람

저녁에 혼자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공동현관 앞에 섰는데 뒤에 한 분이 서 계시더라고요. 처음 보는 분이었어요. 배달 오신 것 같지도 않았고, 어느 집에 가시는지도 알 수 없었고요.

문이 열렸는데 그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제가 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몇 초 사이에 든 생각은 하나였어요. 여기 사시는 분일 수도 있는데, 내가 잡아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래서 안 잡아줬어요.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대놓고 쳐다본 것도 아니고, 그냥 먼저 들어갔어요.

뒤에 사람 있는데 그냥 들어가는 건 무례하다는 얘기 많잖아요. 얼굴 보고 사는 이웃한테 할 짓이냐고요. 반대로 내가 열어준 사람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결국 내가 들여보낸 셈이 되고요. 저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 몇 초 안에 어느 쪽인지를 정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희 단지는 카드만 있으면 열려요

저희 아파트는 원패스예요. 카드를 갖고 공동현관 앞에 가면 알아서 열려요. 그러니까 여기 사는 사람은 비밀번호를 누를 일이 없어요. 뒤에 선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어도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저도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거든요.

반대로 카드가 없으면 안 열려요. 카드를 두고 나온 주민은 자기가 사는 건물 앞에서 못 들어가고 서 있게 돼요. 저도 그런 분 열어드린 적 있어요. 방문하시는 분은 세대 호수를 눌러서 그 집에서 열어주는 방법이 따로 있고요.

솔직히 저도 저희 단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지는 못해요.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세대마다 다른 것 같긴 한데 확실하지 않고, 배달하시는 분들이 어느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시는지도 몰라요.

문 한 번 잡아주는 게 큰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그 문 하나면 저희 층 복도까지 올라올 수 있잖아요. 현관 앞 복도에 택배, 유모차 어디까지 둬도 될까에서도 썼지만, 복도도 결국 다 같이 쓰는 데고요.

그날 제가 문을 안 잡아준 건 저분이 외부인이라고 봐서가 아니에요. 제가 판단을 안 하기로 한 거예요.

옷차림은 안 봐요

정장을 입었다고 안전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편한 옷을 입었다고 의심할 이유도 없잖아요. 그래서 옷은 그냥 안 봐요.

눈에 들어오는 건 행동 쪽이에요. 공동현관 앞에서 계속 두리번거린다든지, 앞사람이랑 간격을 급하게 좁혀서 붙어 들어오려고 한다든지요. 굳이 기준을 대라면, 어떻게 생겼느냐보다 지금 원래 있는 방법으로 들어가는 중이냐에 가까워요.

그런데 볼 시간이 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요즘은 지하 주차장에서 바로 공동현관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쪽은 공간이 꺾여 있어서 뒤에 누가 오는지 늦게 아는 날도 있어요.

잡아드리는 경우도 있어요. 같은 라인에 살면 엘리베이터에서 오가며 인사는 하니까 얼굴은 대충 알거든요. 그런 분이면 그냥 잡아드려요. 짐 많은 분도요. 엘리베이터도 기다려드리고요. 아까 말한, 카드 없어서 문 앞에 서 계시던 분도 열어드렸어요.

택배나 배달 일로 오신 게 분명해 보이는 분, 아이 안고 계신 분, 짐 때문에 손이 모자란 어르신도 마찬가지고요. 도와드릴 게 눈에 보이면 고민할 일이 아니잖아요.

안 잡아드리기로 했으면 뛰어 들어가거나 문을 세게 닫을 필요는 없어요. 평소처럼 들어가서 문에서 손을 떼면 그걸로 끝이에요.

공동현관 문 잡아주는 경우와 안 잡아주는 경우 기준 카드

저도 따라 들어가 본 적 있어요

저도 뒤따라 들어간 적은 많아요. 카드가 있으니까 그냥 들어간 거지 누구 뒤에 붙은 건 아니고요.

남의 집에 갈 때는 진짜로 따라 들어간 적이 있어요. 호수를 눌러서 부르면 되는데, 마침 앞에 들어가시는 분이 있길래 양해를 구하고 같이 들어갔어요. 한마디 하고 들어가는 거랑 말없이 간격 좁혀서 붙어 들어가는 거랑은, 받는 쪽에서 많이 다르잖아요.

들어가고 나서 인터폰 소리가 났어요

문이 닫히고 나서 인터폰 소리가 났어요. 인터폰을 누르면 소리가 나잖아요. 그래서 돌아봤어요. 그분은 다른 집에 방문하는 거였어요.

제 짐작은 빗나간 거죠. 행동을 본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정확한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안 잡아준 게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분은 원래 쓰라고 있는 방법으로 들어가셨으니까요. 제가 안 열어드려서 못 들어가신 것도 아니고요.

마음이 아주 편했던 건 아니에요. 여기 사시는 분이었으면 어쩌나, 기분 나쁘셨으면 어쩌나 싶어서 미안하고 찜찜했어요. 제가 예민한 편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 찜찜함 때문에 앞으로는 다 열어드려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더라고요.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후회가 더 클 것 같아서요.

그 몇 초에 제가 하는 건 이 정도예요

  • 옷차림으로 정하지 않기. 이건 그냥 안 봐요.
  • 잡아드릴 분이면 잡아드리고, 아니면 평소처럼 들어가서 문에서 손 떼기.
  • 안 잡아줬으면 그걸로 끝내기. 돌아서서 쳐다보거나 뭐라고 하지 않기.
  • 우리 단지는 방문하는 사람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한 번 알아두기. 알고 나면 안 잡아줘도 마음이 덜 무거워요.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으면, 저라면 "방문하시는 집에 인터폰으로 연락해보세요" 정도로 할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말해본 적은 없고 생각만 해봤어요.

그분을 나쁜 사람으로 본 건 아니에요. 제가 모르는 사람을 제 손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몇 초 어색한 건 그 값이라고 생각하고요.